Robot Life2009. 12. 22. 01:20

인터넷 분야에서 ‘2.0’이란 표현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웹 2.0에서 파생된 개방과 공유의 철학은 단순한 마케팅 전략을 넘어 우리 시대의 대표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대중의 자발적 참여로 시장을 키우는 2.0 전략은 첨단 로봇산업에도 접목되면서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위치한 로봇벤처 윌로 개라지(Willow Garage)는 외형상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정말 독특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구글의 초창기 시스템을 설계한 전설적인 엔지니어 스콧 하산의 후원으로 지난 2007년 설립됐다. 그는 다양한 인터넷 사업을 추진해본 경험과 막강한 재력(구글 주식 1%)을 활용해 전혀 새로운 분야인 서비스 로봇 사업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스콧 하산은 인간을 돕는 로봇기술을 실용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것은 수많은 로봇 연구자와 기업들이 만들어낸 로봇SW, 노하우가 서로 공유되지 못하고 각자 칸막이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로봇 분야에서는 A사의 비전시스템, B사의 로봇팔, C사의 이동플랫폼을 서로 접목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개발자마다 신형 로봇을 개발하면서 서로 다른 운용체계와 SW코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호환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기업은 범용성을 지닌 로봇SW 패키지를 선보였지만 아직 시장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윌로 개라지는 로봇계의 폐쇄적인 연구관행을 오픈소스 전략으로 정면 돌파한다는 담대한 비전을 내세웠다. 누구나 공짜로 활용하는 로봇OS 환경을 만들어 무료로 공개하면 수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응용코드를 개발하고 공유하면서 마치 리눅스와 같은 기술 진화를 촉진한다는 전략이다. 윌로 개라지는 지난해 12월 로봇판 리눅스에 해당하는 ‘ROS(Robot Operating System) 0.1’을 최초로 공개했고 세계 각국의 연구소와 공동으로 연말까지 성능이 훨씬 향상된 ROS 1.0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회사 측은 또 자체 개발한 로봇개발용 HW 플랫폼인 ‘PR2(Personal Robot 2)’를 이용해 세계 로봇공학계의 주목을 끄는 실험에 잇따라 성공했다.

◇로봇, 혼자서 밥을 챙겨먹다=지난 6월 윌로 개라지에서는 로봇 스스로 방 안의 전기콘센트를 찾아 전원코드를 꽂게 하는 이색적 실험이 이뤄졌다.

PR2는 자체 시각센서와 전자지도에 의존해 회사 안의 특정 연구실로 들어갔다. 기계팔로 문고리를 돌리고 방문을 연다. 벽에 붙은 전기콘센트 위치를 식별해 로봇본체의 전원코드를 연결한다. PR2는 이러한 동작을 무려 연구실 10곳에서 연속적으로 성공했다. 연구실 한 곳은 전원콘센트를 일부러 높은 곳에 놓아 전원코드가 닿지 않도록 했다. 그러자 PR2는 미련없이 다음 연구실로 향했다.

이번 실험은 로봇개발사에서 획기적인 발전으로 서비스 로봇 기술이 한걸음 더 실용화에 다가간 것으로 평가받는다. 과거에 스스로 충전하고 문을 여는 로봇은 있었지만 실제로 사무환경에서 여러 방을 돌아다니면서 임무를 수행한 로봇은 없었다. 로봇이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전원을 찾고 재충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인간에 비유하면 로봇이 젖먹이 단계를 넘어 혼자 밥을 먹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뜻이다.

윌로 개라지에서 직접 살펴본 PR2는 일본 혼다의 아시모에 비하면 매우 투박하고 인간을 썩 닮지도 않았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수시로 개발한 SW코드를 곧바로 공유하는 오픈형 로봇플랫폼이기에 기술 진보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PR2의 또 다른 장점은 견고함이다. 일본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한 번 넘어지면 각 관절과 부품에 치명적인 손상이 생긴다. 그러나 PR2는 로봇연구를 위한 프로그래밍과 반복 실험에 맞춰 무척 견고하게 만들어져 웬만한 외부충격에도 거뜬히 버틴다. 과시형 로봇이 아니라 다양한 임무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미국식 실용주의를 반영한 로봇이다.

회사 측은 연말까지 20대의 PR2를 제작해 각국의 연구소와 회사에 시판할 계획이다. 성능이 개량된 ROS와 다양한 SW라이브러리가 나올 때마다 PR2의 지능은 놀라운 속도로 향상된다. 윌로 개라지는 오는 12월 외부 사용자 그룹이 스스로 만든 SW코드를 이용해 PR2를 제어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사용자의 참여와 공유를 끌어내는 2.0 전략이 차세대 로봇분야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로봇 2.0의 미래=윌로 개라지는 최초의 로봇 2.0 기업이다.

이 회사의 목표는 청소로봇, 보안로봇 등을 만들어 당장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세계 로봇개발자들이 사용하는 오픈소스 운용체계를 공급하고 여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사업모델을 장악한다는 전략이다.

빌 게이츠도 몇 년 전 로봇시장에 뛰어들면서 유사한 2.0 전략을 선보였다. MS는 윌로 개라지와 마찬가지로 로봇 개발에 필요한 표준화된 SW환경을 제공해 SW 개발자들이 여러 아이디어와 로봇 플랫폼을 공유, 로봇시장을 키우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내놓은 로봇SW 저작툴 ‘로보틱스튜디오(MSRS)’는 편리한 기능에도 대기업의 체질적 한계로 아직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MS가 결국은 로봇OS 시장을 윈도 환경으로 만들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윌로 개라지는 MS보다 한결 세련된 전략과 경영철학을 내세우고 있다. MS와 구글의 기업문화 차이와 흡사하다.

키난 와이로벡 연구원은 “우리는 현 단계에서 이윤 추구에 관심이 없다. 단지 로봇 개발 허브로서 세계인에게 공헌하고자 할 따름”이라며 “당분간 로봇 분야의 싱크탱크에 가까운 역할을 하고 향후에는 파생되는 사업모델을 통해 기업분사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이 돈 버는 데 관심이 없다는 것은 분명히 거짓말이다. 돈 많은 창업자가 풍부한 재정 지원을 하고 있기에 시간과 수익성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로봇시장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윌로 개라지가 선보인 오픈소스 ROS는 스탠퍼드대학, MIT, 뮌헨 공대 등 세계 각지의 로봇연구소가 참여한 덕분에 빠른 속도로 기능을 개선하고 있다. 다른 연구팀에서 만든 SW코드를 자기가 만든 로봇장비에 적용하고 다시 다듬는 과정을 통해 로봇의 지능과 능력은 눈덩이처럼 쌓여간다. 로봇전문가들은 윌로 개라지의 새로운 실험이 성공하게 되면 서비스 로봇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예상보다 일찍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일부에선 경계의 목소리도 들린다. 국내 한 로봇전문가는 “윌로 개라지의 오픈소스 전략은 구글이 휴대폰 OS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안드로이드를 선보인 것과 판박이”이라면서 “오픈소스화된 미국발 로봇OS가 한국 로봇산업에 득인지 독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하튼 로봇 분야에도 개발과 공유의 시대정신이 필요하다는 그들의 기업철학에는 충분히 공감이 갔다.

◆인터뷰-키난 와이로벡 퍼스널로봇 프로그램 디렉터

“ROS의 기능을 개선하자는 아이디어가 세계 각지에서 하루 수십건씩 들어옵니다. 어떤 대기업도 자체 인력만으로 OS환경을 수시로 업그레이드하진 못하죠. 이게 오픈소스화의 장점입니다.”

윌로 개라지에서 퍼스널로봇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키난 와이로벡은 오픈소스 기반의 ROS로 머지않아 세계 로봇연구자들의 성과물이 하나로 뭉쳐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서비스 로봇은 다양한 산업기술과 소비자 참여를 거쳐 완성도가 높아지기에 오픈소스 전략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어떤 사람들은 로봇OS 환경을 공짜로 제공하면 손해가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저는 다양한 소비자 참여로 인한 로봇시장 확대와 파생될 사업기회를 감안하면 훨씬 이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윌로 개라지의 독창적 기술보다 개방과 공유로 대표되는 철학적 배경을 더 강조했다. 홀로 첨단로봇을 개발하기보다 타인의 지적성과를 인정하면서 함께 성장하려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다. 서비스 로봇기술이 향후 시장을 창출하는 데 어떤 분야가 유망한지 물었더니 사람들의 안락함을 돕는 자동화 도구보다는 생산성을 높여주는 작업도구로 발전할 것이란 답변이 나왔다.

“예를 들어 사무실의 수많은 서류파일 중에서 2주 전 사인한 문서만 찾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업무상 꼭 필요로 하는 순간 로봇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값이 좀 비싸도 잘 팔릴 겁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샌프란시스코(미국)=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Posted by rohs